“사람은 공부해야 한다”며 나무 팔아서 대학입학금 주셨던 아버지" 평생 잊지 못할 아버님의 말씀인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하느니라”라는 명언을 잊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6세 때, 십 리나 되는 산골짜기 언덕 밑 초가집 서당으로 천자문을 배우라고 보내주신 덕분에 60년이 지난 지금도 한자(漢字)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셔서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신 아버님께서, 6·25전쟁 때는 신의주까지 총 들고 싸우러 가셨다고 하니 인생 자체가 전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면사무소에서 버린, 다 찢어진 신문을 얻어다가 등잔불 밑에 펼쳐 놓고 읽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꼴을 베어 오너라. 콩밭에 거름을 주거라. 모판을 나르거라” 하시며 일을 시킬 때마다 불만 가득한 눈으로 아버님을 바라보면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처럼 농사꾼이 되기 싫습니다. 서울 가서 기술을 배워, 기술자가 될 겁니다”라고 소리치면서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도망치듯 올라가는 큰아들의 뒷모습을 아버님은 안타깝게 바라보셨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일할 때도 늘 “기술을 배워도 제대로 배워야 하느니라. 남에게 뒤지지 말고 열심히 하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열심
최근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지자체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머리에 하얗게 새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젊고 예쁜 여성분이었는데, 대화를 나누면 놀라울 정도로 답답했다. 주변에서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들 중 최강자를 꼽으라면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최근에 만난 사람들 중 그렇게 생각이 막혀있는 사람도 보기 어려웠다. 놀랍게도 카카오톡 알림글에는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고 되어 있었다. 나는 새치, 그러니까 흰머리카락이 잘 생기지 않는다. 아내가 간혹 가다 한 두 가닥씩 뽑아줄 정도다. 언젠가 아내가 "내일 모래면 마흔인데, 새치가 없네. 신기해."하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소한 일에 걱정하지 않고 생각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10대와 20대 때는 멀리서 봐도 제법 듬성듬성 보일 정도로 새치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꽤 생각이 복잡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심각한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생각을 처리하는 방법을 몰라서 새치가 꽤 생겼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놀라우리만치 검은 머리 투성이다. 우울증 진단도 받아봤는데 0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5~10점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드문 결과였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초심자는 이것저것 들쑤셔보기 마련이다. 벤치프레스도 하고, 스쾃도 하고, 덤벨도 들어본다. 평소에 먹지 않던 닭가슴살을 삶아서 먹고, 다이어트 식단도 꾸려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맥주와 안주라는 '초심'으로 돌아간다. 어떤 분야에 있던지 모든 성공자들이 Back to basic을 강조하는 이유다. 시도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목표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퍼스널 트레이너가 누구나 알 만한 직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퍼스널 트레이너가 그리 대중적인 직업은 아니었다. 생소한 직업이었고, 체계적인 헬스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던 시기도 아니었다. 그런 시기임에도 슬럼프를 이겨내며 꾸준히 30여 년 간 운동을 지속해온,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보디빌더이자 No.1 트레이너로 불리는 선수가 있는데, 강경원 선수다. 그는 훌륭한 몸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3가지를 당부한다. 1. 기본으로 돌아가라 2. 식단을 유지하라 3. 분명한 목표를 정하라 30여 년 간 운동을 해오면서 기본에 충실했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언어는 상당한 영
서울에서 고속버스 예약을 했는데, 광양과 동광양이 다르니, 광양가서 환불하고 다시 표를 사라고 합니다. "같은 금호고속 버스 회사인데~??" 환불하면서 표를 바꾸니까, 30% 추가금액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30%씩이나? 완전 사기꾼들." 급히 택시 타고 가면서 생각을 합니다. "이게 뭔 짓?" 책을 써 보지도 않은 사람이 책을 평가합니다. 소설을 써 본 적도 없고, 시를 쓴 적도 없는 사람이 "문학 평론가"라고 떠듭니다. 한글 문법도 모르고, 어휘 수준도 형편없는 사람이 신문사 "논설위원"이라고 사설을 씁니다. "문학인" 모임안내문에 한글도 틀렸습니다. "현제 진행중?" 그게 문학인 수준인 듯. "웃겨쓰" 공부도 못하고, 무식한 사람을, 직위가 높다고 "명예박사 학위"를 줍니다. 자격증도 돈 주고 삽니다. 웃기는 세상입니다. 정치도 모르는 애들이 당 대표이거나 최고위원이라고 떠들고 다니고, 그런 걸 뽑아 놓고 떠들썩 합니다. 영어도 못하는 선생이 영어를 가르칩니다. 정말 웃깁니다. 그런 걸 "인물"이라고 내세우는 것들이 더 웃깁니다. 그래서 세상은 재미가 있습니다. 완전 "개콘"입니다.
강사가 될 거라고는 상상한 적도 없지만, 공고를 나와 자동차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공대를 가고, 컴퓨터를 전공한 사람이 인사과장직을 맡아 실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점이 참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임원실에 들어 가 떼를 쓰듯이 얻어 낸 뉴욕 보험대학(The College of Insurance) 연수는 횡재를 한 느낌이었다. IMF지원을 받던 외환 위기에는 구조조정을 두 번씩 하면서 직원을 줄이고 사직서를 제출한 후, 강사가 될 거라고는 예상한 적도 없다.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을까, 닭을 기를까, 커피숍을 낼까, 빵집을 할까 2년이 되도록 망설이고 흔들렸다. 우연히 강의를 하게 된 때에 무모하게 도전한 것이 번역과 저술, 그리고 칼럼을 쓰는 거였다. 강의를 잘 하시는 선배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며 간접 경험을 얻고, 그 분들의 조언을 깊이 있게 들으며, 그런 과정에서 한국강사협회를 창립하고 세미나를 개최하고 강사육성과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로서로 강의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웠다. 함께 강의연습을 하고 개인 코칭을 받으면서, 어느 분이 번역한 책의 문장을 다듬어 주다가 과감하게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뉴욕타임즈나
아침 출근길에 아들이 "아빠, 가지 마" 하고 떼를 쓰며 울었다. 간신이 떼어놓고 가려는데, 이제는 "아빠, 가"하고 떠다 민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떠미는 아들을 두고 문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잽싸게 뛰어와서 바짓가랑이를 잡고 더 크게 울었다. 그런 아들을 품에 안고 한참을 다독이다가 귓가에 대고 이야기했다. "아빠는 세상을 다스리러 가는 거야. 아빠가 세상과 싸우지 않으면, 아빠도 세상에 있는 수많은 바보들처럼 평범한 사람으로 살게 될 거야. 아빠가 바보처럼 사는 것보다,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는 게 좋겠지?" 그리고 사무실에 왔는데, 동료의 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은 남편과 저녁밥을 먹던 중이었다.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밥을 먹다가 갑자기 스르르 뒤로 넘어갔고,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54세. 한창 일해야 할 나이였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세요." 장례식에 다녀온 동료가 내게 이야기한 말이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참 허무하다."하고 이야기했다. 아프리카에서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2009년 1월이었다. 평소 건강관리를 위해 수영을 다니시던 분이었는데, 수영을 하고 나와서 샤워
“모르시는 말씀 하지 마세요. 수업 중에 학생을 건드리면 큰 일이 납니다. 학교 교장에게 고발하면 다행이지요. 곧바로 교육청에 신고합니다. 여기에 말단 선생님은 모든 힘을 잃게 됩니다. 수포자가 14%라고 보도되는 건 거짓말입니다. 적어도 40%정도는 수학을 포기했을 겁니다.” “학생의 자유를 빌미로 공교육이 무너지는 마당에, 어떤 교사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북한을 찬양하며, 친일 반일을 부추기면서 갈등을 일으킵니다. 학생들이 그것을 모르는 줄 아세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학생들은 이미 선생님들 이야기와 주장을 다들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냥 조용히 있을 뿐입니다. 수업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교직에서 물러나신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며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이렇게 운영되는 학교 교육에 대해 교육당국은 아무 대책도 없고 생각도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교권(敎權)과 학생의 인권(人權)을 비교하자는 게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사명과 책임이 있으며, 학생의 자세와 의무가 다르다는 겁니다. 필자가 공고를 다닐 때, 영어 선생님은 얼마나 강의를 잘 하고, 학생들에게 강한 의욕을 불어 넣어 주셨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그 분 덕택에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면서, 일상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 못지않게 '일과 공부의 균형(Balance with Work and Learning)'이 의미하는 바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6월 11일자 파이낸셜 타임즈 사설에 “일하며 배우고, 공부하며 익히는 것(Learning by doing and Doing by learning)만큼 강한 학습은 없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일은 못해도 공부를 좋아하며 책만 읽는 선비가 있고, 무식한 듯 하면서도 일은 잘하고 돈을 잘 버는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가정이 엉망진창인 집도 있지만, 적당히 어렵게 살면서도 화목한 집안도 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공부 좋아하는 사람이 학자나 선생님이 되거나, 사업 잘 하는 경영자가 대학원 최고경영자(CEO)과정을 다니면서 공부하는 경우라면 매우 좋겠습니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겠어?”라고 따지는 사람은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필자는 공부를 좋아하면서도 형편에 따라 사느라 이른 나이에 공장을 다니며 20여 년간 직장에서 열심히 일만 했는데, 우연히 강의를 하고 책을 쓰게 되어 후반기 삶에서 '딱 맞는 일거리'를 찾았습니다. 그런
살다 보면 다양한 인간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인간관계는 놀라운 인사이트를 제공해주는 귀한 기회로 연결되기도 한다. 최근에 만난 두 분 역시 운명처럼 시작된 인연이었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 분들이었다. 두 분 모두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실패에 대한 경험이었다. 한 분은 지난 10여 년 간 실패를 많이 경험했다고 이야기하셨다. 아내분도 그런 실패를 견디는 것이 힘들었던 것일까? 아내에게 "있잖아, 내가..."하고 운을 떼면 아내분에게 즉시 돌아오는 대답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 마. 그냥 가만히 있어.“ 그의 주변에는 훌륭한 지인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사업이나 향후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면 "형님,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멋져요. 좋은 아이디어입니다!"하고 응원하며 격려해준다고 이야기했다. 뒤이어 "근데 그 친구들도 지금까지 계속 실패만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우리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반면에 "이제 젊은 나이도 아닌데 그만 좀 하자. 뭘 자꾸 하려고 하냐?" 하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 대다수가 평범하게 살면서 본업에 만족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서 해주셨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한참을 낄낄거리면서 웃고 떠들며
가까운 지인이 헬스 트레이너로 재직하고 있다. 꽤 오랫동안 운동을 해왔다. 키는 175인데 몸무게가 95kg에 육박한다. 멀리서 봤을 때 불룩하게 나온 배 때문에 전혀 트레이너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의 거대한 팔뚝과 가슴근육은 꽤 튼튼하다. 소위 말하는 벌크업Bulk up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그는 결코 훌륭한 트레이너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루는 그가 하소연을 해왔다. 평소 이렇다 할 하소연을 하지 않는 사람인데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보았다. 그의 말인즉슨, 남의 뒷담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충고에 의하면 '트레이너가 그렇게 몸 관리를 해서 어떡하냐'는 거다. 선명한 근육을 갖고 자기 관리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뱃살만 뒤룩뒤룩 찌워서 무슨 트레이너를 하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고 했다. 몇 번을 설명해줘도 이해를 못 하고 더 큰소리를 치느라 힘이 빠진다고 이야기하며, 한동안 상심에 젖어 있었다. 얼마 뒤 그는 자신이 팀장으로 근무하는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의 관장에게 이런 사정을 털어놓았고, 수많은 프로급 보디빌더와 트레이너를 양성한 경력이 있는 관장은 그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한마디로 일축해버렸다.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