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남한산성 너머에 있는 교도소에서 강의를 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들에게 무슨 강의를 어떻게 하라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지만 약간의 호기심도 생겼다.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마칠 수 있었다. 봉천동의 장애인센터에서 강의 요청이 왔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분들에게 삶의 가치와 비전에 대해 강의를 해 달라는 거였다. “그 분들에게 내 강의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원한다고 하니 잘 해야겠지.” 생각하면서 수락을 하고 또 걱정을 한다. 강의를 하고 돌아 오니, “좋은 강의 감사하며, 이메일을 쓰느라 몇 시간이 걸렸다”는 인사의 글이었다. 작년 가을, 세종시에 신설학교인 종촌중학교 1학년 250명의 학생들에게 2시간의 강의를 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고민을 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어린이들에게 무슨 강의를? 그것도 체육관에서 250명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교장선생님과 차 한 잔을 하고 강의실에 들어 선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질서정연하게 의자에 앉아 강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슬라이드를 넘기면서 진지하게 강의를 하는데 어느 누구도 일어서거나 떠드는 학생이 없었다. 뒤쪽
어머님을 학교에 모셔 와서 교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성적을 올려 달라고 비는 대학생이 있다는 글을 읽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많은 학생들로부터 성적을 정정해 달라는(올려 달라는) 문자와 메일로 교수들은 골치를 앓고 있다. 청년실업률이 12%를 넘어섰고, 체감으로 느끼는 실제 실업률은 더 높다고 한다. 한편, 중소기업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 외국근로자를 쓰는데 어려움이 많고 인건비도 적지 않다는 소식이 들린다(조선일보 2016. 3. 21.).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인정받는 독일의 대학진학률은 25%가 되지 않는다. 우리 나라의 대학진학률은 70%가 넘는다. 최근 중국 자동차 회사가 국내에 공장을 지을 거라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가 미국과 중국 등 해외 여러 곳에 공장을 지었다. 그 모든 공장들이 한국에 있었다면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일자리는 외국과 외국근로자들에게 빼앗기고, 우리 젊은이들은 남의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예상된다.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 온 젊은이들도 취직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나 계약직으로 버티고 있다. 위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우리나라 청년실업 문제는 벌써 십여 년 전에 예상된 일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잘 사는 건 아니다. 지혜로워서 부자가 된 것도 아니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현명하지 않으며, 부지런하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느린 사람이라고 불행하지도 않다. 그건 그때그때 다르다. “합리성과 지성의 차이(The Difference Between Rationality and Intelligence)”에 관한 글이 뉴욕 타임즈에 실렸다(Gray Matter / SEPT. 16, 2016. NYT).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는 것과 지식 또는 지성은 다르다는 거다. 많이 알고 있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사례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오히려 배운 사람들이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이나 합리적인 결정과 행동은 지식이나 교양과 관계가 없는 것 같다. 피도 눈물도 없는 승자 독식(勝者獨食, The winner takes all.)의 경쟁이 일어나는 상황은 뉴욕의 월가(Wall Street)에서 일어난 폭동에서 볼 수 있다. 무지막지한 소득을 올리는 금융가의 탐욕에 시민들이 돌을 던졌지만 어느 누구도 그 돌을 맞거나 반성하진 않았고 지금도 변한 건 없다. 그냥 코웃음만 쳤을 것 같다. 우리
“요즘 젊은이들은 책을 읽을 줄도 모르고 글을 쓸 줄 몰라요.” 어느 출판사 사장과 대화 중에 들은 충격적인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일부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걱정이 되어 하는 소리인 줄 안다. 한글을 모른다는 게 아니라, 문장의 이해력과 문장 구성 능력이 없다는 거다. 스스로 책을 읽거나 글을 써 본 적이 거의 없어, 책의 문장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 글을 왜 썼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생각을 정교하게 정리하고 다듬어서 글로 표현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강의 시간에 백지에 질문을 받아 보거나, 어떤 문제를 풀도록 하고 발표를 시키고 토론을 하게 하면서 자세히 관찰해 보면, 질문과 대화의 수준이 높지 않음을 발견한다. 말과 글에서 대학을 졸업했다는 학생 수준 높은 어휘나 정교한 문장을 찾을 수가 없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멍하니 쳐다보면서, 혹시 자신에게 질문을 말을 걸까 봐 두려워하는 눈치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이렇게 계속 내버려 두어도 되는 걸까? 안타까울 뿐이다. 어려서부터 주입식 교육으로 암기만 하게 하고, 4지선다형 문제만 풀어 보았으니 정해진 답을 고르는
“영어 공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제가 맡은 일을 잘 하게 될지 불안합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 4년, 총 10년 동안 영어공부를 하고 입사한 신입사원이 강의시간에 내놓은 질문이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 온 사원이 영어 공부 방법을 묻고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누구 잘못인가? “장자크 루소와 피타고라스, 세종대왕이 인류역사에 끼친 영향력을 비교 분석하라.” 오래 전, 어느 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채용을 위한 면접시험에 외부 면접위원으로 참석하여 입사지원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어느 지원자 한 명이 “헐~!” 하고 나가버렸다. 이게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평균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안 됩니다.”라고 핑계를 대는 입사지원자는 아예 생각도 없는 듯이 보였다. 누구 책임인가? 흙수저 출신의 대학교수들과 와인을 마시며 밤 늦도록 “한국 교육 체계와 대학 교과과정의 문제점" 등에 대한 토론을 했다. 대학의 기능과 역할을 잃은 대학에서 빨리 명예퇴직을 하고 싶다는 교수의 말씀이 씁쓸하게 들렸다. 요즘 거론되는 E 대학의 비리와 부정부패 문제가 정말 그 대학만의
집값이 떨어질까 봐 장애인학교나 복지센터를 혐오시설이라고 하면서 근처에는 오지도 못하게 하고, 여러 지역에서 어린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날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교통질서와 언어폭력이 난무하고 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부끄럽고 창피스러운 일을 한 적이 있어, 이 글을 쓰기에 떳떳하지 않으나, 국민소득 2만불이 넘어도 시민의식과 생활방식은 1만불도 안 되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필을 든다.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바, 그 몇 가지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이 땅의 지도자들이 “교양 있고 품격 있는 시민”이 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고, 수준 이하의 언어를 제멋대로 표현하는 것은 리더의 자질에 한참 부족한 것이다. 아무리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그만한 자리에 가 있다면 교양과 도덕이 우선 중요하다. 행동과 언어가 일치해야 하며, 그 수준이 선진국의 리더들보다 나아야 한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책임과 사명이며 의무다. 2,500년 전, 의성 히포크라테스는 “훌륭한 의사는 아플 권리가 없다”고 했다. 훌륭한 지도자는 게으르고 무식할 자유도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장사를 하든, 사람은 누구나 강한 부분이 있고, 약한 점도 있으며, 부족한 면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히 인정받고 싶고 훌륭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사랑 받고 싶고, 존중 받고 싶고,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자아실현의 욕망이 있다. 특히, 권력의 맛을 보거나 재물에 욕심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강한 열정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부족한 면이 많은 사람이 훌륭한 사람처럼 보여서 좋은 자리나 위치에 가고 싶으면 아래와 같이 행동하면 된다. 첫째,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형용사와 부사를 많이 사용한다. “아름다운 정치”, “착한 예산”, 깔끔한 경쟁”, “부드러운 결정”, “아주 특별한 관계”, "절대적이고 극단적인 결정" 등과 같은 표현을 많이 활용한다. 그러면 아무리 치졸하고 지저분한 내용을 담은 전략과 꼼수도 예쁘게 보이고 그럴듯한 모양새로 느껴진다. 속으로는 어떤 꿍꿍이 전략을 갖고 있거나 말거나, 내심 불안한 측면이 있어도, 말하고 글을 쓸 때는 최대한 “아름답고 예쁜 언어”로 포장할 수 있어야 한다. "거짓이 진실처럼 왜곡되지 않도록, 진실이 거짓으로 오해
시대는 바야흐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국가 간 경계가 무너지면서 지구촌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다. 모든 지식과 정보가 손안에 든 스마트폰에 가득하고, 학벌과 나이가 무의미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때에 한국 사회는 아직도 고향을 묻고 나이를 따지며, 전공과 학위로 파벌을 짓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Law School) 나온 사람과 고시 패스한 사람을 기수별로 구분하고, 경찰대학 나온 사람과 경찰공무원 시험으로 경찰이 된 사람을 나누며, 사관학교 출신과 ROTC 출신을 구분하는 폐습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만나기만 하면 고향에 따라 편이 갈라지고, 나이에 따라 서열을 정하며, 학벌을 묻고 종교를 따지면서 SKY캐슬까지 등장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을 하며, 다국적 국민들과 어울려도 부족한 상황에, 500년이 넘도록 우리 끼리 다투고 있다. 200만 명에 가까운 외국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현대사회에 아직도 다문화 가정이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유치원에서 왕따를 당한 아이가 울고 있다. 이는 한국에 와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에게 곁눈질을 하는 한국인들의 무례함이다. 레바논에서 태어나 브라질에서 자라고 프랑스에서
- 환경오염 방지 위해 플라스틱 사용·차량 운행 줄이자 세계는 지금,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잡은 고래의 배 속에서 1000조각의 플라스틱이 발견됐고(CNN, 2018. 11. 21), 말레이시아에서는 1만7000t의 플라스틱 오염으로 한 개 도시가 질식할 정도라고 했다(BBC, 2019. 2. 13). 한국 평창올림픽에서 마늘 소녀로 유명해진 의성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태우며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다(CNN, 2019. 3. 3)는 소식이 외신에 실렸다. 플라스틱 제조사와 쓰레기 처리 전문 기업 등의 이해가 충돌하고, 각종 음료수와 과자 등을 비닐로 포장하는 업체들도 고민이 많겠지만, 분명히 해결방법이 있을 것이다. 어느 커피 전문회사는 커피숍에서 플라스틱제품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거나, 싱가포르에서는 도시별로 등록차량 대수를 정해 놓아 일정량 이상의 차량이 운행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일본 도쿄(東京)에서 후지산으로 올라가는 국립공원의 도로는 아무리 차량 정체가 심해도 나무를 베어내면서까지 도로를 넓히지는 않는다. 미세먼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물과 공기를 포함한 자연환경의 오염과 파괴는 후손들이 살아갈 땅이고 하늘이다. 어찌 우리만
철학과 영혼이 없는 집단의 특징 세계적인 수준으로 지역경제를 끌어 올리는 지방공직자가 있다. 최고를 지향하며 밤낮으로 뛰어 다니는 공무원이 있다. 조직 구성원들이나 모임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최고의 학습과정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가는 리더가 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머리가 숙여지며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런가 하면 한심하다 못해 불쌍한 집단이 있다. 철학과 영혼이 없는 집단이다. 자신들의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의 책무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직업 철학과 삶의 영혼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 그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 책도 읽지 않고 강의도 듣지 않는다.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언어의 수준이 천박하다. 거칠고 속된 언어를 마구잡이로 뱉어 낸다. 격조 높고 품위 있는 언어란 찾아 볼 수가 없다. 의미 있는 말과 글을 표현할 줄 몰라 생각나는 대로 내뱉다 보니 시비가 잦다. 깊이 있게 생각할 창의성이 없고 다양하게 표현할 어휘력이 부족하다. 학벌은 좋은데 실력이 부족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둘째, 그들은 말보다 몸이 앞서 간다. 논리적인 협의보다는 폭력을 앞세운다. 설득과 타협도 할 줄 모르니 쓸데없는 트집을 부리고 사소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