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고향에 다녀왔다. 내가 태어나 줄곧 자라고 대학까지 졸업한 경북 안동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내가 학창시절을 보내던 당시에 안동 인구는 20만명이었고 지금은 15만 6,000명(2022년 2월 기준)정도라는 사실이다. 20년 사이에 5만여 명 가까운 인구가 타지로 나가버렸다. 모르긴 해도 대개 젊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향에는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 평생을 안동에서 사신 분들이다. 1년에 12번의 제사를 지내고 한복과 비녀가 습관화되어 있는 그런 집과는 거리가 멀다. 부모님이 '안동사람답지 않은 안동분들'이었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안동이라는 도시에 대해 갖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마주했을 때였다. 고향에 가면 늘 부모님이 해주시는, 또 사주시는 밥을 먹는다. 몇 번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으나 한사코 거절하셨다. 지난 몇년간, 지독한 실패와 어려움을 만나면서 용돈 한 번 제대로 드린 적이 없었다. 명절날 고향에 다녀올 때마다 며느리 손에 봉투를 쥐어주시는 분들이셨다. 어버이날 자동차와 집을 부모님께 선물해드렸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버지가 사주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종종 인터넷 서점 판매 순위를 검토해보면, 유명 강사나 주식, 부동산 투자 관련 책들의 판매고가 높다. 50년 전, 30년 전 서점에서 판매고가 가장 높은 책들을 선별하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시대는 변화하고 있으며, 출간되는 책들의 종류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이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라고 이야기한 소설가 라나와 블랙웰 Lanawa blackwell의 말처럼, 장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는 도서의 대부분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 수준과 비슷하다고 이해한다면 다소 섣부른 판단이 될까. 모든 사람은 늙는다. 사고의 깊이를 넓혀가는 과정을 넓히지 않는다면 30년 뒤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 리스트는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복잡하고 난해한 생각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가는 사고의 물결을 거치지 않는다면 생각의 수준은 미미한 수준으로밖에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드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호모 Homo는 현존하는 인류와 그 직계 조상류를 의미한다. 사람과 Species of Human being를 의미하는 단어 호미니데H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참 신나게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하던 게임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산책하는 동안,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줄곧 생각했다. “왜 내가 이 게임을 하고 있을까?” 나는 평소 게임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심심할 때 혼자 즐길만한 게임을 한 번 배워볼까 하고 이것저것 쑤셔봤지만 크게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다분히 의지력이 약한 탓이겠지만, 현실세계도 아닌 가상세계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만큼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종종 산책을 다니는 것, 혼자 길거리를 배회하는 것, 독서하고 책을 쓰는 것 외에 별다른 취미 생활이랄 게 없다. 반면에 3, 4년에 한 번씩 스타크래프트에 빠지는 습관이 있다. 식음을 전폐하고 5일에서 1주일 정도는 스타크래프트에만 몰입한다. 잠자리에 누웠다가 머릿속에서 전략이 떠나지 않아 슬그머니 서재로 들어가서 한 판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든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루는 아내가 등짝을 때리며 잔소리를 하길래 봤더니 두 돌이 갓 지난 아들이 혼자 밥그릇을 갖다 놓고 밥을 먹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이 스타크래프를 접했던 그 시절, 한국에 IMF가
"안색이 별로 안 좋네." "마음에 어두움이 있는 것 같아." "너는 모르겠지만, 네 표정이 밝지 않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주변 지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정작 나는 하루하루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활용하고 있었고, 내게 주어진 인생의 고귀함을 마음 깊이 감사해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중에는 '그들이 민망해하지 않도록 "사실 그동안 정말 힘들었다"며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이라도 해야 되는 걸까'하고 고민을 한 적도 있었다. 정작 내 마음은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한데, 주변 사람들이 쉽게 던지는 말들 때문에 안색이 안 좋아질 뻔했다. 내 마음의 행복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들이 가진 판단의 잣대로 나를 저울질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해답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한다는 사실이었다. 흔히 말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었다. 가스라이팅gas light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해서 스스로에 대하여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만든 뒤 상대방을 통제한다는 의미를 가진
최근에 지인을 만나러 마산에 다녀왔다.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이었다. 이전에 근무하던 국제 대안학교는 각 지역마다 지부가 있었고 교사들도 지역마다 배분되어 있었는데, 지인은 마산지역에 위치한 대안학교에서 근무하던 교사였다. 당시 영어교사였던 그분은 탁월한 교습능력으로 전국에 위치한 대안학교에 초청을 받아 다니곤 했었는데, 추가 소득을 벌기 위해서 과외를 시작했다가 오픈하자마자 학부모들이 몰리는 바람에 2,3개월 대기 순번이 생길 정도로 일을 잘하는 분이었다. 같은 조직에 소속된 교사였다고 해서 잘 알게 된 것은 아니었고, 처음엔 그저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분을 알게 된 것은 조금 재미있는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공부를 제법 잘하던 사촌동생이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획일화된 일반학교에 입학하는 것보다 내가 근무하던 대안학교에 입학을 시키면 자신의 꿈을 좀 더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각 지역마다 입학 여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그분이 근무하던 학교에서 다음 학기에 신입생 모집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분이 "선생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하고 나에게 질문을 했다. "전준우입니다." "아, 그 뮤지컬 하셨
수년 전 학습지 기관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이 친절하고 겸손하셨으나, 간혹 그렇지 않은 분들도 더러 계셨다. 그런 분들을 관리하는 건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육에 대한 철학과 방향성을 이야기해도 듣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봤을 때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젊은 남자 교사의 실력이 다른 교사들보다 월등히 뛰어날 리는 없고, 이렇다 할 스펙도 없었기에 무슨 이야기를 해도 학부모님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그러다 첫 책이 출간되자마자 내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는데, 항상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책이 출간된 이후에 전적으로 자녀교육에 대한 권한을 나에게 맡기는 분도 계셨다. 그래서 명함을 만들거나 스티커를 제작할 때도 의도적으로 전문가의 분위기가 풍길 수 있도록 디자인했고,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풍기기 위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접목시켰다. 우리는 다양한 심리학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심리학에 기초를 둔 마케팅 요소가 상당히 크게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설득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법이다. 사람뿐만 아
학창시절의 나는 꽤 산만한 편이었고 공부와도 전혀 거리가 먼 부류였다. 반장이나 전교회장은 꿈도 꾸지 않았고, 선생님들이 보시기에도 별 볼일 없는 그저 그런 학생이었다. 이렇다 할 특징이랄 게 없었다. 소심하고, 눈물이 많고, 앞에 나서기보다 뒤로 물러나 가만히 상황을 지켜만 보는 부류의 학생이었다. 그렇게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유독 책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책을 한 권 사주시면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던 기억도 있다. 물론 그 시대가 그러했기에 그랬던 것도 사실이다. 1990년대 초, 경북 안동이라는 도시는 지금보다 훨씬 작고 정보의 속도가 느린 도시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책 말고 무슨 놀거리가 있었겠는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나이가 들면서 드러나게 된 나의 숨겨진 끼와 능력들 때문이었다. 확실히 내게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기술들이 몇 가지 있었다. 독특한 생각을 진행시켜 나간다든지, 희생정신이 유달리 뛰어나다든지, 연기에 특출난 재능이 있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은 공부와 전혀 거리가 먼 학창시절을 보낸 나같은 사람에게도 있을 수 있
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다닌 적이 있었다. 우연히 어느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고, 평범한 면접 질문이 오갔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했고, 그는 하루라도 빨리 사람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왔기에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함을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하며, 평범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멀리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비범한 사람들이 아니면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다. 오해는 하지 말자. 내가 생각하는 평범은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 무탈하게 자라는 아이들, 주 5일제 정규직 회사를 다니는 가장을 둔 가정이 아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당시 나는 대표에게 몇 가지를 질문했는데, 두 가지가 기억난다.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입니까?" 머뭇거리긴 했지만, 그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대표님에게 직원은 어떤 존재입니까?" "돈 벌어주는 사람들이지. 그 사람들 덕분에 내가 먹고살고."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시기이긴 했으나, "같이 일해봅시다"라는 그의 제안에 "아니요, 괜찮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다. 성공과 실패는
최근 지역 유지들과 더불어 고위직 공무원들과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겼는데, 덕분에 전혀 뜻하지 않게 정치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들도 조금씩 주어졌다. 당파싸움이나 이권다툼 같은 부분은 관심도 없을뿐더러 정치색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배척하는 일도 나와 맞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많은 기회와 인맥의 확장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그들로 인해 크고 작은 기회들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겸손하게 행동하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부분에 조심히 행동한다면 좋은 경험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 정치권의 세계인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권이 마냥 행복하거나 감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은 아니라는 사실을 덧붙이고 싶다. 민주주의 국가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처럼 민중에 대한 지배권력을 가진 통치체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를 갖고 발언할 수 있으며 소신 있게 자신의 뜻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긴 하다. 그러나 좀 더 내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공천제도라는 것이 있고, 각 구와 군, 읍마다 지역을 이끌어가는 결정권자와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의 영향력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에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읽었다. 존 버니언이라는 사람이 쓴 책으로, 세계적인 고전이다. 종교적 색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고전문학이라는 선입견만 없다면, 펼치는 순간 글의 깊이에 압도당한다. 그만큼 수준이 높은 책이다. 책은 한 남자가 꿈에서 크리스천이라는 사람의 여행기를 기록하면서 시작된다. 천국을 향한 여정에서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어려움을 만나고, 위기를 만난다. 그리고 험난한 여정 끝에 비로소 천국이라는 목적지에 다다르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크리스천의 아내와 아이들이 뒤따라 길을 떠나는 내용은 천로역정 1부가 끝나고 수년이 지난 뒤에 2부로 출간되었다. 너무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므로 한 번 읽고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천로역정을 고전 중에서도 가장 수준 높은 고전으로 만들 수 있었던 이유를 꼽으라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성경과 질문의 깊이다. 성경 속에는 수많은 왕과 왕비,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지만,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는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성경은 사람이 가진 마음의 흐름에 대해 매우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에 해당하는 단어들(소심, 대담, 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