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때, 직원들을 해고 시키고, 같이 사표를 쓰고 나와, 관악산 도봉산을 오르내리며, 술을 퍼 마시며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굳이 인사과장이 직원들을 내보냈다고 그만 둬야 할 것도 아니고, 회사 구조조정을 하고 나면 인사과장이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함부로 쫓아 내지도 못한다. 고용보험 신고해야 하고, 인사발령 다 다시 내야 하고, 조직 개편해야 하고, 명예 퇴직금 줘야 하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의리가 있는 사람처럼 사표를 던지고 욕을 먹었다.
공고를 졸업하고 취직이 되지 않아 영등포에서 술 마시고 깡패들과 싸우며 방황하던 적이 있다. 아무리 공장이 많다고 해도, 내로라할 기술 기능도 없는 공고생을 환영할 곳은 많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날마다 술을 마시며 푸념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못된 애들과 패거리가 져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기도 했지만, 그 후 비교적 자신을 돌아보며 살고자 노력했다.
대학 입시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충무로에서 취했을 때는 정말, 인생을 포기하고 싶던 적도 있다. 공장에서 일을 하며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공부를 했는데, 연거푸 2년이나 입시에 떨어지고 나니 희망을 걸 곳이 없었다. 물론, 공장에서 그냥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주변의 땅이라도 샀으면 지금보다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도 그 놈의 대학이 뭔지 목을 매달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도와 준 친구들이 있었고, 읽어서 위로 받은 책이 있었으며, 아름다운 음악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썼고, 스트레스와 긴장을 글로 풀면서 음악을 들었다. 그래서 책이 탄생한 거 아닐까?
그림도 그렇고 음악도 그런 거라고 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예술이 탄생하는 것이다. 고흐처럼, 슈베르트와 베토벤처럼, 힘들수록 어려울수록 뭔가 집중하면서 고통을 잊어야 할 핑계를 찾는 거다. 그래야 견딜 수 있고, 버틸 수 있고, 각자의 삶을 사랑할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스탕달의 “적과 흙”, 버트런트 러셀의 “서양철학사”, 장자크 루소의 “참회록”, 모차르트와 베토벤, 차이코프스키와 하이든, 슈베르트와 바흐, 그리고 많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고, 지금도 고맙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지금도 힘들어 할 누군가에게 작은 참고가 될까 하여 개인적인 실제 경험을 정리한 바,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