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양당주의의 대승리(“Triumph of U.S. bipartisanship”, JoongAng Daily, Koichi Hamada, 2021. 9. 6)”, “우리의 미래는 과거에 빠져들고(“Drowning our future in the past”, NY Times, Maureen Dowd, 2021. 9. 6), “미국의 새로움, 전쟁의 두려움(‘America’s New, Disturbing of War’, NY Times, Samuel Moyn, 2021. 9. 6)를 기반으로 작성한다.
오늘, 2021년 9월 6일의 주요 외신을 읽으면서 한국의 현재를 생각한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이 수십 년 동안 두 개의 정당으로 국가를 통치해 온 것에 비해 한국은 1945년 해방 이후 200여 개의 정당이 등록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인물 중심으로 변해왔다.
이들에게 통치철학이나 애국심을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다.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이라고 해서 올바른 교양을 갖추었거나 지적인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최근에 다시 깨닫고 있다.
변호사나 교수, 국회의원이나 도지사라고 해도, “평판과 품성이 같지 않다(Reputation is not Character.)”는 증거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러 가지 사건과 개개인의 사례를 일일이 들추어 명시하고 싶지는 않다.
사고를 치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지도자들의 행실은 학교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가족의 내력이나 가문, 부모로부터 보고 배운 게 겨우 그런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올바른 가르침과 학교교육이 인간을 성장시키고 성숙한 교양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교육학적인 면에서 아주 일부분만이 “그럴듯한 이론”으로 증명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학교교육이 기대에 어긋나는 이유는 인간교육의 성과는 학교교육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사회교육과 가정교육이 함께 어우러진 즉, “전인교육(Whole Person Education)”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인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아버님께서 필자가 5살일 때 서당(書堂)을 보내주시며 천자문(千字文)과 사자소학(四字小學)을 배우라 하시고, 서예(書藝)를 할 때는 붓과 벼루, 먹을 갈아서 한 획을 긋는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신 이유를 이제야 알 듯 하다.
필자는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에게 취업에 관한 강의를 할 때마다 3가지 자질 즉, “지식과 기술, 태도(Knowledge, Skills and Attitude)의 균형과 조화”를 강조한다.
머리가 좋다고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얄팍한 잔머리에서 나오는 행동이 주변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성실한 태도나 습관이 없는 지식은 쓰레기만도 못하다는 걸 재차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가 끝날 무렵, 그 동안 중단되었던 “직접 대면교육이나 세미나 등”이 활성화되어 기업과 대학에서 “올바른 인간교육“이 강화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