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체해부학자이며 천문학자이고, 건축학자였으며, 화가이며 요리사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영국인으로 살았으며,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로서 수학자이며 철학자이고 언어학자였다. “북학의(北學議)”를 지은 박제가는 경제학자이며 시인이고 화가였으며 서예가였다. 다산 정약용은 실학자이고 경세가였으며, 문학자이며 시인이었다. 세종대왕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최근 대학의 개혁과 혁신을 주도한다고 하면서 인문계열을 줄이고 공대를 늘린다고 한다. 취직을 목표로 삼아 인재를 키워야 한다며, 각 대학마다 취업실적을 기준으로 평가를 해서 지원금을 배정한다고 한다. 일부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학의 자유를 빼앗아 정부 즉, 교육관할 부처에서 모든 대학을 일률적인 기준으로 평가를 하고 잔소리를 한다는 것은 학문의 가치와 대학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처사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 철학자가 없고 음악이 없고, 문학이 없으며, 미학이 없는 나라를 상상해 보라. 의사와 변호사, 공대생들만 있는 국가를 상상해 본다. 그걸 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전기, 컴퓨터, 보험,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지금까지 필자가 공부한 분야의 과목들이다. 공업고등학교를 들어 가서 3년간 전기를 공부했지만, 대학을 들어갈 때는 당시 가장 어렵다고 하는 컴퓨터공학(電子計算學)을 선택했다.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수학인데, 당시의 컴퓨터 공부는 거의 “영어로 된 수학(Operation Research, Numerical Analysis, Software Engineering 등)”이었다. 과외를 가르치며 등록금을 벌면서 힘들게 공부했지만 희망과 꿈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당연히 전산실에 근무하면서 평생 컴퓨터 일만 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인사과로 발령이 나서 노사업무와 교육과 복리후생 등에 관한 일을 하게 되었으며,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영업부서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고객들을 만나 설득을 하고 협상을 하는 일도 배웠다. 어려운 일을 하다 보니 모르는 게 많아서 힘들었고, 얕은 지식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을 다니며 보험학을 공부했다. 운이 좋았던지 뉴욕으로 연수를 갈 기회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전공은 물론 나 자신의 직무에 대한 전문성 또는 적성에 혼란이 왔다. 뚜렷하게 내세울 것도 없지만 모르는 게 없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단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많은 일들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 분야의 책도 골고루 읽어보게 되었다.
짧지 않은 직장생활을 마친 후, 우연히 대학과 기업체 등에 강의를 하게 되었다. 감성 리더십과 변화 혁신,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과 성과 관리 등에 관한 강의는 다년간의 실무 경험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은, 지금까지 공부하고 익힌 업무와는 전혀 다른 것이지만, 꾸준히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한 덕분에 12년째 대학 강의를 하고 있다. 다양한 직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용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보니 수강생들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3권의 책을 쓰고 3권의 책을 번역을 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력에 대해 아쉬움도 있지만, 다양성 또한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면서 위로를 받는다.
최근 대학원 특강이나 기업체, 경제 경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문학이 뜨고 있지만 인문계열 학생들은 취직이 어렵다고 하고, 공부 좀 한다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법대를 가거나 의대를 찾는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공대를 기피하고, 이과를 무시하는 사회의 흐름은 변하질 않는다. 최근에는 또 우수한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 나간다고 하니 한국의 미래를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취직을 하고자 하는 젊은이들 중에 “적성에 맞지 않는다.”, “원했던 일이 아니다.”, “회사 문화가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고민에 빠져서 방황을 하고 고민을 한다고 어떤 이는 취직만 되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고 하여 입사한 후, 몇 달도 되지 않아 인사도 없이 회사를 떠나기도 한다.
강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동료들끼리 토론을 시키거나 협의를 해서 발표를 하라고 하면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멀뚱멀뚱 바라만 보는 사람도 있다. 발표자료를 만들라고 하면 무엇을 써야 할지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일명 “귀차니즘”에 빠진 듯하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의미를 되새기며, 깊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고, 쉽고 가볍고 즐거운 시간만 행복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귀한 언어에 상처를 주고 올바른 문자를 망가뜨리는 언론과 방송인들을 보면서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는 듯하여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