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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준우 칼럼] 특별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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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를 집필하는 분 중에 심리학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 계신다. 우연한 계기로 TCI 심리테스트를 받았고, 꽤 놀랄만한 평가를 받았다. 상담을 진행해주신 교수님은 "전 작가님 점수가 저랑 거의 비슷해요." 하고 이야기하셨다. 두려움 지수는 0에 가까웠고, 인내력과 연대감은 100점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점수가 평균치의 2배 이상 웃돌았는데, 영성 분야 spirituality는 만점이었다.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없는 일반인 수준은 되네요." 하고 농을 던지자 "이런 점수는 일반인이 아니고 특별한 사람인 경우예요."하고 이야기하셨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주머니 사정은 결혼 초에 비해 전혀 달라지지도, 나아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익숙해져 버린 실패와 둔한 경제적 감각 덕분에 더 나빠졌다. 금융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용불량자 등급 언저리까지 내려갔다가 지금은 조금씩 올라오는 추세다. 나보다 얼빠진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세상에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인생이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있는가, 고민하던 시간이 많았다.

 

꾸준히 사회생활을 해왔더라면 별다른 어려움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운명처럼 책도 쓰고 많은 경험을 하긴 했으나, 사업을 한답시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동안 30대를 흘려보낸 건 사실이다. 당연히 후회는 없다. 다시 30대 초반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아마 더 빨리 튀어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지금은 조직생활이 익숙하지 않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 바뀌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평가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의 첫 직장은 무역회사였고, 두 번째 직장은 환경분야 연구소였다. 동료들과 상사들로부터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10년 전에 다녔던 회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직속 상사와는 아직까지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그러다 다양한 경험을 거치고 난 뒤 다시 시작한 조직생활에서 받은 평가는 별로 좋지 않았다. 일부 조직에서 나를 바라보는 평가는 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사람들과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고, 마음도 잘 흐르지 않았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도 크게 미움을 받을 만큼 모난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일부 조직에서의 문화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이었기에 하루도 견디기가 어려웠다. 덕분에 한 달 만에 해고를 당한 곳도 있었다.

 

놀랍게도 기업가, 사업가, CEO분들과는 상당히 대화가 잘 통했다. 대화의 폭이 넓었고, 대화의 방향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큰 사업체를 물려줄 테니 운영해볼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다양한 경험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기회를 보는 눈, 일을 대하는 자세,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등 나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 자세는 직장인의 뇌구조에서 벗어나 기업가와 작가의 뇌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자세였다.

 

최근 들어 시작한 고전 탐구 모임에서 고전 탐구수업을 참여하는 동안 어마어마한 분량의 플롯과 등장인물, 섬세한 표현력을 갖춘 작품들을 읽고 연구하며 사색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지나 고대, 중세, 현대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연구하면서 진정한 자아 성찰의 의미에 대해 심도 깊게 연구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근래 유행하고 있는 심리학 서적의 근간이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시작된 건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인간의 심리를 아주 세밀하게 표현한 부분도 인상적이었고, 전쟁에서의 승리가 인간승리로 연결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 준 왕과 장군들의 비극적인 파멸도 인상적이었다.

 

자기 계발과 심리학 서적도 많이 출간되고 있고, 심리학 강연이나 마스터마인드, 멘탈리티 관련 세미나들도 많이 진행되는 요즈음 시대에 그런 강의나 책 보다 이런 고전을 한 번 읽는 것이, 생각하지 않고 배우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된다는 점에서, 훨씬 심리학적인 부분이나 멘털적인 훈련에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계는 있었다. 인류 역사와 시대의 궤를 함께 한 대서사시를 읽는다는 지적 허영심이 지독하게 두껍고 난해하기만 한 고전들을 읽게 만든 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대부분 고전들의 마지막 장은 허무하게 끝났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이라는 건 알겠지만, 뭔가 아쉬움은 남는 건 사실이었다. 뭐지? 이게 끝인가? 싶은 마무리, 목침으로 써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두껍고 무거운 데다 엄청나게 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로 인한 복잡한 플롯을 갖춘 고전들은, 화려한 커버 디자인과 상당한 비용을 쏟아부은 마케팅 전략으로 인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리는 수많은 작품들에 비해 다소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런 고전이 당대를 대표하는 엄청난 책이었고, 실제로 생각을 많이 한 사람들이 썼을 테고, 그리스의 교과서로 불리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좀 철없이 행동한다 싶을 정도로 보이는 신들의 이야기나 이야기의 잔혹성들이 지금 시대에 비추어봤을 때는, 고전이니까 읽는 것, 일종의 지적 허영심으로 읽어내려는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이기는 데 어려움이 따를수록, 이겼을 때의 기쁨도 큰 법이다.”

-펠레 pele

 

축구선수 펠레의 오래전 흑백 영상을 보면 확실히 대단한 선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펠레가 월드클래스로 활약하던 시대와 손흥민, 음바페가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는 지금 시대를 비교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미 세상은 많이 좋아졌다. 펠레가 월드클래스 축구선수로 활약하던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먹는 음식, 훈련의 다양성, 화려한 스킬이 훨씬 앞서 나갈 것이다. 젊은 펠레가 지금 다시 축구선수로 태어난다면 모를까, 50년 전의 펠레와 2020년대를 사는 음바페나 손흥민의 실력을 비교해본다면 실력 차이는 꽤 많이 나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오디세이아와 일리아드보다 크게 마음에 와닿은 책을 꼽으라면 많이 있다. 인생 최고의 책은 레미제라블이었는데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뒤를 이어서 다양한 작품들이 연결되고, 그렇게 연결된 작품들이 서로에게 다양한 플롯으로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고전이 가진 나름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고전이 가진 이러한 원론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고전이 고전이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고전 탐구수업을 진행하며 우리가 나눈 대화들은 상당히 고차원적인 것이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한 번 읽는 행위만으로 수준 높은 토론은커녕 제대로 이해조차 되지 않는) 고전을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으로 다가왔다.

 

삶과 죽음의 의미, 부와 명예, 행복의 근원, 아버지와 아들, 참된 용기, 비겁함, 타인을 위하는 이타심과 이타주의 정신 등의 주제를, 고전을 통해 나누고 토론한다는 점에서 얻어지는 것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모임의 특성상 일반적인 독서 토론 모임과는 수준이 달랐고, 참석하는 분들도 대부분 남다른 생각의 깊이를 갖고 있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얻은 것은 사람이나 지식뿐만이 아니었다.

 

영성 spirituality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삶의 가장 높고 본질적인 부분이며, 진정한 자기 초월을 향하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역동성을 통합하려는 고귀하고 높고 선한 것을 추구하는 삶의 실제”다. 복잡한 설명이지만, 인간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의 뿌리이자 생각의 구성요소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종교적인 신념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살면서 만들어진 기질, 성격, 태도는 곧 '실제적으로 그러한 나'를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본질, 즉 자아를 의미하는 셈이다.

 

굳이 학창 시절의 나를 되돌아보지 않더라도, 서른 초반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 달라진 것을 많이 느낄 수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똑같은 하루를 맞이하면서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들과 보폭을 맞추어 조직생활을 할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내는 것이 당연하게만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이 그러한데 나라고 다를 게 뭐 있겠는가. 그러나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이 내일과 다르고, 내일과 내년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뒤쫓아가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나의 내면 역시 단단해지고 깊어지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놀라운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성공하지 않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낫다." 언젠가 어느 강연에서 들은 말이다.

 

기업의 오너를 두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종교지도자를 두고 특별한 사람이라고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기업가, 종교지도자라고 표현한다. 책을 썼다고 해서 평범한 사람이 특별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하지 못한 대단한 일들을 일구어냈다고 해서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닐 듯하다.

 

앞서 언급한 상담 교수님의 말씀처럼,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경험과 기회들을 내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때로 그런 경험과 기회들은 실패라는 이름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기도 하며, 때로는 귀인을 통해 얻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살면서 배워나갔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즉, 특별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경험과 기회들을 내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채워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실패, 어려움, 독서, 때로는 숙명적인 노력을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