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사용할 파티션이 필요해서 알아보기 위해 가구매장에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에서 쓸 파티션이 있나요?"
"네, 높이가 120cm, 150cm가 있습니다."
"120cm는 좀 낮은 것 같고, 150cm로 6장 부탁드려요."
파티션이 도착했고, 설치를 했다. 그제서야 나는 내 키가 170cm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과, 키가 158cm밖에 되지 않는 아내와도 키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150cm에 달하는 파티션 때문에 사무실은 요새가 되어 버렸고,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 생겼다.
세계적인 천재 법학자 칼 비테 주니어를 교육한 아버지 칼 비테Karl Witte는 아들이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가르쳐주기 위하여 아무나 믿지 않도록 가르쳤다. 겉으로 보이기엔 순해보이고 천진난만해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속은 어둡고 교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침으로써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사는 동안 다양한 능력과 기술이 필요하지만, 지혜로운 마음을 갖추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별력이 아닐까 싶다. 매사에 정확한 분별력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어려움과 문제들을 걸러낼 수 있는 지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분별력은 빨간색 공과 까만색 공을 식별하는 시각적인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선과 악을 가르는 일차원적인 능력을 뛰어 넘어서 탁월함과 탁월하지 않음, 도움이 되는 것과 도움이 되지 않는 것, 사소한 실수로 인해 어마어마한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능력 등을 포함하는 능력이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남성 2명이 전동킥보드를 함께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몇 번이고 돌려봤다. 그들은 차가 돌진해오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킥보드를 타고 길을 건넜다. 신호 위반이었기에 차는 그대로 그들과 충돌했고, 그들은 세차게 쏟아붓는 소나기를 맞은 가을 낙엽이 힘없이 우수수 떨어지듯이 날아가버렸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세계 속에 숨어서 고소해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서 불쾌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얼마나 분별력이 없으면 저런 사고를 당하나' 하고 혀를 찰 뿐이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어느 물류회사 공장에 가면 신기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품이 진열대 위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데, 그런 진열방식이 연면적 5만평이 넘는 건물 전체에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다. 선뜻 보기엔 이해할 수 없으나, 고객들의 구매 패턴을 분석해서 가장 자주 구매하는 상품군끼리 묶어서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고객의 구매 패턴이 일종의 프레임이므로, 프레임에 맞춘 물품 배치로 인해 국내 최초로 가장 빠르게 배송할 수 있는 배송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분별력은 일종의 프레임과 같다.
인간의 생각은 프레임으로 구축되어 있다. 간단한 프레임으로 구축되어 있을 수도 있고, 아주 복잡한 프레임으로 구축되어 있을 수도 있다. 정확할 수도, 모호할 수도 있으며, 견고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프레임이 견고한 사람일수록 옳음이 강해서 듣지 않으며 그에 걸맞는 결과를 맞이한다.
프레임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은 역시 그에 걸맞는 결과를 맞이한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뉴질랜드는 재난 상황으로 설정해놓은 뒤 국경을 잠궈버리는 봉쇄 정책을 실시했고, 영국은 코로나19를 감기 정도로 생각하며 완화 정책을 실시했다. 오래지 않아 뉴질랜드는 코로나 청정국가를 선포했고, 영국에서는 5만여 명의 코로나19 관련 사망자가 발생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되는 문제들 중 상당수는 분별력의 유무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식할 것인가, 소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소식을 선택한다면 상당수의 성인병이 사라진다. 일찍 잠자리에 들 것인가, 야식을 하고 늦게 잠자리에 들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이른 잠자리를 선택한다면 상당수의 불면증과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것과 탁월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것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형태 역시 큰 폭으로 달라진다. 지금 처해 있는 환경이나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올바른 분별력을 바탕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기에 발생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최선의 수단과 최선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지혜라면, 지혜는 분별력의 유무에 따라 상당히 크게 자라거나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지혜는 최선의 수단으로 최선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아일랜드의 철학자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의 말을 기억하자.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최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의 의미를 기억하며, 올바른 분별력은 결코 틀린 결과를 선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