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우 칼럼] 인연과 필연사이

2022.11.11 23:13:32

 

첫 회사에 사직서를 쓰고 나온 날은 2014년 10월 31일이었다. 그날은 비가 내렸고, 퇴근길 라디오에서는 2pac의 "Life goes on"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빨간색 모닝을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몰라 한숨만 쉬었다. 자동차 앞유리에 투두둑 떨어지던 빗소리와 축축한 공기, 다소 차갑게 느껴지던 그 순간이 생생하다.

 

사업을 해보겠노라고 큰소리는 쳐두었으나, 사업이란 걸 해본 적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동대문에서 몇 벌 떼온 옷을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몰라 길거리에 테이블을 깔아놓고 판 적도 있고, 길가던 여대생을 붙잡고 설명하다가 거절을 받은 적도 있었다. 방황의 시간이었다. 2014년 11월 3일에 빨간 모닝을 타고 아내와 둘이서 떠난 가을여행은, 그런 실패의 서막을 마주하기 위하여 떠난 첫 가족여행이었다. 목적지는 전주였다.

 

가진 것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한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도 돈이 없었다. 제일 싼 펜션과 게스트하우스만을 골라 다녔다. 담양, 전주 등 포괄적인 목적지를 제외하고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수준이었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전주는 지금이나 그때나 우리에게 꿈의 도시였으나, 사고 싶은 걸 사고 원하는 호텔에서 잠잘 수 있을 정도로 물가가 싸진 않았다. 그래도 첫 여행인데 큰맘 먹고 좋은 곳으로 가자 싶어 고르고 고른 곳이 분위기 좋고 아늑한 어느 게스트하우스였다. 하루 숙박료는 10만 원이었다.

 

싸지도, 비싸지도 않았다. 다만 우리에겐 큰돈이었다. 하루 숙박에 10만 원이라는 말에 아내가 망설이자 전화기 너머에 계신 사모님은 이유를 물으셨고, 아내는 "저희가 신혼부부라서 여행을 왔는데, 예산을 조금 초과했거든요."라고 대답했다. 아내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 그래요? 그럼 8만 원에 해드릴게요. 아니다, 7만 원에 해드릴게요."하고 이야기하시는 목소리가 무척 밝았다. 아내도 밝고, 사모님도 밝았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갈 필요 있겠나, 다른 데 가자.”라고 할 수도 있었을 그 상황에서, 깎아달라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우리에게 작은 호의를 베풀고자 한 그분의 친절이 우리를 이끌었음을 안다.

 

그렇게 도착한 게스트하우스는, 생각했던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리가 생각한 건 작고 소소한 게스트하우스였다. 가난한 신혼부부가 잠시 쉬었다 갈 수 있을 정도의 아늑한 게스트하우스면 충분했다. 그렇기에 분위기도 좋고 예쁘긴 해도 10만 원씩이나 주고 자기엔 좀 비싸다, 하고 생각했던 게스트하우스가, 그러나 상당히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엔틱가구들과 소품들로 가득 채워진 고급 갤러리에 가까운 게스트하우스라는 것을 알게 되자 한참을 '우와! 우와!'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대단히 품위 있는 예술공간의 일부분을 잘라내어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소망을 다스리는 며느리로서 지혜로운 딸들의 어머니로서, 무엇보다 위대한 남편의 현명한 아내로서의 역할을 하고 계셨을 사모님은 실제로도 무척 친절한 분이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사모님은 먼 이방인인 우리 부부에게 직접 만든 요플레를 예쁜 찻잔에 담아서 주셨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가 첫 손님도 아니었고, 딱히 좋은 인상을 남길 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으나, 먼저 연락처를 물어보셨다.

 

"너무 잘생기셨네요. 마치 영화배우처럼 생기셨어요.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빨간 모닝을 타고 전주까지 다녀오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오고, 3일 동안 샴푸도 없어서 물로 대충 감은 머리는 미역처럼 떡졌다. 그럼에도 '언젠가 영화배우가 되고픈 꿈이 있다'는 말에 과찬을 아끼지 않는 겸손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고객관리 차원에서 물어보시는가 보다 싶어 별 의미 없이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렇게 8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좋은 경험으로는 남아 있으나 그리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은 지난 시간들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내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지나고 나니'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겪은 어려움들 속에 조금씩 쌓인 지긋지긋한 빚 때문에 경제적 여건이 썩 나아졌다고 이야기할 건 아니나,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통해 인생의 형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게 된 2022년이 되어서 다시 만난 전주는 처음 방문한 2014년 그때보다 조금은 더 너그러운, 그리고 풍요로운 마음을 갖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8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사모님과 반가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필연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진지한 고찰을 하게 되는 경험을 마주하게 되었다.

 

결혼 초기에 떠난 전주 여행에서 만난 사모님은 대단히 훌륭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다. 우리는 빨간색 중고 경차를 타고 먼 도시에 여행 삼아 방문한 젊은 신혼부부에 불과했다. 그렇다 보니 이렇다 할 연결고리도 없었고, 종종 안부 인사를 드리는 것 외에는 관계가 이어질 리 만무했다. 그런데 8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내면의 중심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한 경험들이 나로 하여금 사람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형성시켜 주었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로의 마음에 크고 작은 신뢰가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중, 사모님이 내게 물었다.

"혹시 직업을 바꿀 생각 있어요?"

"직업이요? 어떤 직업으로요?"

"이런 카페를 하나 주면, 운영해볼 수 있겠어요?"

수도권에서나 볼 수 있는 초대형 카페는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도시 전주와 무척 잘 어울리는 예쁜 카페였다.

"카페와 캠핑장을 운영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공사는 들어갔고, 완공되면 전주에 와서 같이 운영해보면 참 좋을 듯해요. 한번 고민해봐요."

 

검증되지 않은 도시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것은 많은 두려움과 아울러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 고민을 동반한다.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 엄청난 실수였을 수도 있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전화위복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떤 것이 기회인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번 만남을 두고 기회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8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신뢰와 견고한 믿음이 상대방의 눈빛, 대화, 언어,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 속에서 섬세하게 드러나보였기 때문이다.

 

기회를 보는 눈이 어떠한가에 따라 그 사람의 자질과 역량이 판가름 난다고 믿는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앞머리는 길고 뒷머리는 대머리인 이유가 그러하다. 게다가 기회의 신은 저울과 칼을 들고 있다. 저울은 조금이라도 무거운 곳으로 기울고, 칼은 자르는 능력이 있다. 기회를 보는 눈 안에는 저울질할 수 있는 분별력도 있고, 과감하게 잘라내는 신념과 믿음도 있다. 올바른 분별력은 기회를 만들고, 신념과 믿음은 기회를 성취로 연결시킨다. 올바른 분별력, 신념과 믿음이 인연과 필연을 판가름짓는 데 중요한 능력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귀한 시간이었다.

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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