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해설] 고교학점제 서둘지 말자

2021.12.29 13:50:33

 

앞으로 4년 후인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시행된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고 정해진 만큼 학점을 채우면 졸업을 인정하는 제도다. 현재는 3분의 2만 출석하면 고교 졸업이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성취율 40% 이상인 192학점을 3년간 함께 채워야 가능하다

 

이번에 도입하는 고교학점제는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 등이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고교 서열화 폐지’라는 교육철학을 기반으로 한다.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공약으로 채택돼 2018년부터 연구·선도학교를 중심으로 시범 운영하고 있고 지난해부터는 마이스터고에 우선 도입됐다. 일부 시도교육청은 오는 2022년부터 고교학점제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현 초등학교 6학년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2025년부터 전국 모든 고교로 확대한다는 로드맵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고교학점제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교 교원 대부분이 2025년 전면 시행은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한국교총이 지난 7월 고교 교원 22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72%가 2025년 전면 도입을 반대했다. 전체 응답 교원의 82.9%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보다는 ‘대입에 유리한 과목 위주로 선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진보교육연구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7개 단체가 전국 고교 교사 11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 조사 결과, 13.2%만 고교학점제 추진에 찬성했고 48.9%는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37.9%는 시행을 연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에서 교사 91.7%는 학교 현장과 충분한 소통 없이 교육부가 고교학점제를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원들은 고교학점제로 학생 간의 교육 격차를 우려하고 있다. 교원들은 고교학점제가 ‘하위권 학생에게 가장 불리(47.3%)’할 것으로 예상했다. 학업에 흥미가 적은 하위권 학생들은 성취도평가를 통과하기 쉬운 과목 중심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역 간, 학생 간 교육양극화만 더 커질 것이라는 게 일선 교원들의 판단이다. 또한 응답자의 91.2%가 ‘다양한 교과 개설을 위한 교사 수급이 불가’하다고 했다. 교사마다 2~3개 과목을 담당할 수밖에 없어, 수업의 질 문제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설하기 어려운 과목은 외부 강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원은 “학생들에게 흥미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게 하고, 장래 진로와 연계해 교육을 받는 과목선택제는 누가 봐도 그럴듯하다. 학교에서는 공공의 가치를 가르치고 공공의 영역이 우선이어야 한다. 그런데 고교학점제는 학교에서 공공성을 가르쳐야 하는 소중한 시간에 개인의 진로에만 전념하라고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다른 교원은 “교내 설강이 어려운 과목은 대학 등 타 기관을 통한 학점 이수를 가능하도록 한 제도는 고교의 교육과정 이수 이력을 포함한 학생부 평가를 통해 대학을 진학하는 현 체제에서 또 다른 금수저 전형의 핵심 요소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경쟁적으로 유명 대학이나 저명한 기관에서 학점 이수를 하고 그 자료로 평가를 받으려 하지 않겠는가. 외부기관을 통한 학점 이수는 역시 권력과 재력의 부모 찬스가 작용할 공산이 크다. 동시에 어렵게 돌아가는 고교 교육 정상화에 침해를 줄 수 있고 가장 핵심적인 학교교육과정 운영의 와해를 부추길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교육정책도 생산자는 소비자의 소비력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그 소비는 적어도 소비자의 효율을 따져봐야 한다. 더구나 그 생산 품목이 어린 학생들의 성장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므로 더 소홀히 할 수 없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이제 고교학점제 시행이 목전에 있다.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현장 교사의 말을 정확하게 듣고, 그들이 문제시하고 우려하는 점들을 낱낱이 해소하고 현장 교사들을 동참과 공감의 길로 정성을 다해 이끌어 함께 가기를 바란다. 공약은 경우에 따라 바꿀 수 있고 또 더 연구해서 시행할 수도 있다. 바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이보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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