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길 칼럼] 파이어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2021.10.21 11:32:31

얼마 전 중앙일간지에 “대기업 타이틀이 삶을 보장해 주진 않더군요”란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내용은 이렇다.

 

“월급에 기대어 사는 리스크(위험)를 줄이기로 했죠.” 2년 전 회사를 관두고 조기 은퇴한 김도협(41)씨. 그가 대기업 명함을 포기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는 “더는 내 삶을 남(회사)에게 맡겨선 안 되겠다 싶었다”며 “하루빨리 경제적으로 독립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조기 은퇴를 결심하고 5년 만에 종잣돈 4억 원을 21억 원으로 불린 뒤, 39세에 회사를 떠났다. 조기은퇴자, 파이어족이 됐다.

 

이 사례 외에도 최근 비슷한 얘기를 심심찮게 듣게 되는데, 과연 파이어족이 뭘까?

 

파이어족(FIRE)은 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경제적 자립, 조기 퇴직'(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따 만들어진 신조어다. 고소득·고학력 전문직을 중심으로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투자를 늘려 재정적 자립을 추구하는 생활 방식이다. 이들은 30대 혹은 40대 은퇴를 목표로 수입의 절반 이상을 저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파이어 운동은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온라인을 통해 알려졌다. 특히 전통적인 사회보장제도가 붕괴하고 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부모세대인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지켜본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자)가 여기에 주목했다. BBC는 이후 10년간 파이어 운동이 미국을 포함해 호주, 영국, 네덜란드, 인도 등에도 확산했다고 전했다. 최근엔 한국 사회에도 파이어족이 상륙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파이어족이 늘어나는 한국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취업난에 자본 소득 대비 뒤처지는 노동가치, 불안정한 고용과 길어진 수명 등이 조기은퇴를 부추기고 있다. 돈보다 내가 주도하는 삶에 대한 갈망도 하나의 이유가 됐다.

 

파이어족의 상당수가 이른 은퇴보다 재정적 자립에 중점을 둔다. 불필요한 소비에서 벗어나 중요한 것에 집중한다는 가치 전환이 핵심이다. 은퇴 후에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보다는 절약하며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불필요한 소비를 지양하고 저축과 장기투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돈에 얽매이지 않고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대로라면 건전한 꿈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파이어 운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자. 그중 하나는 이른 은퇴로 인한 잠재 소득의 저하다. 많은 직장인의 소득이 40대에 최고점에 이르며, 이른 은퇴는 연금 등의 사회보장제도 혜택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은퇴 후 부동산이나 주식 등의 투자수익에 의존할 경우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생활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고소득 직종이 아니면 절약을 통한 재정적 자립이 어렵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인생에 있어 40대는 꿈이 무르익는 황금기라 할 수 있다. 100세 시대에 40대 은퇴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다. 1998년 IMF 사태 때 많은 직장인이 나이 불문하고 소위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강제 퇴직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켰는지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필자가 정년퇴직한 지 20년이 지났다. 은퇴 이후의 삶이 행복한가를 짚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 나온다. 여행도 몇 번 다니면 시들해지고 다른 취미들을 가져봐도  별 의미를 못 느꼈다. 반면에, 나이가 들수록 ‘일하면서 산다는 것’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생선배로서 파이어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당부 한마디 하고 싶다. "한창 불태워 일할 인생의 황금기를 불태워버리지 말기를..."

이보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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