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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준우 칼럼] 일상의 기록, 그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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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부터 늘 쓰는 습관이 있었다. 서른을 갓 넘기면서부터는 한동안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을 늘고 다녔다. 서른 중반이 넘어가는 어느 시점부터는 플래너 바인더를 항상 옆구리에 끼고 다니기 시작했고, 많은 메모가 필요할 때는 메모장을 다운로드하여서 사용하고 있다. 에버노트에서 원노트로, 원노트에서 노션으로 옮겨갔는데, 노션에서는 더 이상 더 나은 메모장으로 넘어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꾸준히 몇 년째 사용하고 있고, 아이패드 전용앱인 프리폼과 공유하면서 일상을 기록한다.

 

일상이라는 것은 결국 단순한 시간과 평범함의 반복이다. 특별할 것도 없고 대단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일상의 기록이라는 것도 기실 알고 보면 별 것 아니다. 가구佳句 실력을 뽐내기 위한 것도 아니고, 소설 작품을 쓰기 위한 밑거름이 되어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늘 똑같은 하루의 순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굳이 평가하자면 고백문학이라고나 할까. 둔사를 쓸 필요도 없는 게 일상의 기록이다.

 

그런 일상의 기록이, 어느 시점이 되어서는 그리움과 소중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고 느껴지는 어느 날, 고되고 지친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에 우연히 열어본 메모장과 일기장에서 의외의 따뜻함과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늘 똑같은 하루의 기록이 왠지 모를 소망으로 새록새록 다가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전쟁의 기록이다. 당시로서는 평범한 일기에 불과했지만,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순신 장군의 일기는 새로운 종이에 인쇄되어 판매되고 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도 평범한 일기다. 화려한 문장도 없고, 안네 프랑크가 대단한 동량지재였다는 기록도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히워지고, 만들어진다.

 

조지 오웰은 20세기 영문학의 독보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쓴 산문은 일상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상을 기록한 글, 누구에게나 일어남직한 글, 누구나 공감할 만한 글을 꾸준히 쓴 것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저널리스트이자 디스토피아 소설의 독보적인 대작가를 만들어낸 셈이다.

 

이처럼 누구나 일상이 있다. 개미에게도 일상이 있고, 볼펜에게도 일상이 있다.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모든 사물에는 일상이 있다. 그런 일상 속에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경험과 사실들, 즉 일사逸事도 있다. 오늘 하루는 평범한 일상에 그칠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일사이기도 하다. 그 일사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 글쓰기의 기초가 되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