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공장 직업훈련소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선반(旋盤)과 밀링으로 쇠를 깎을 때, 가죽 장갑을 끼고 용접을 할 때, 진짜 하기 싫었습니다. 1년의 수련기간을 마치고 공장에 배치되어 자동차 피스톤을 깎고 주조공장에서 쇳물을 녹일 때, 탈수증이 생길까 봐 소금물을 마셔가며 땀을 닦고 쇳물을 퍼 나를 때, 정말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도장공장에서 페인트칠을 하다가 온 몸에 화상을 입을 정도로 큰 화재가 났을 때 도망치듯 피해 나오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거, 그 과정을 통해서 번듯한 고급 승용차가 나온다는 걸 알았을 때, 행복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내가 만든 승용차가 해외로 수출되고, 보너스를 받고, 사내 기능 경진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때, 기뻤습니다. 그 때 “인내의 힘과 땀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뒤늦게 들어 간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기업에 취직이 되어 업무 흐름도(Flowchart)를 그리고,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시험단계(program test)를 거칠 때, 거의 날마다 밤을 새우고 날마다 꾸중을 들었습니다. 소수점이 틀리거나 논리적 사고력(Logical Thinking)이 부족하다는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때려치우고 싶었습니다.
그런 과정이 먹고 살기 위해 누구나 하는 건 줄은 알지만, 무슨 일이든지 꾹 참고 견디는 동안 배운 건 인내력뿐만 아니라, 시스템 분석방법, 논리적 추론 방식, 놓치지 않는 세밀함의 중요성(System Analysis, Logical Inference, Power of Detail )등을 깨달았습니다.
어쩌다 영업부서로 발령이 나서 고객들과 입씨름을 하고, 가격흥정을 하면서 꼴 보기 싫은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는 “이 짓거리를 해야 먹고 사는 건지?” 화가 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지만, 계약이 체결되고 수익이 생기고, 우수영업사원 표창을 받을 때는 영광스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재수 없는 사람을 고객으로 만드는 법을 배우고,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 앞에서 허리를 굽히는 예절도 배웠습니다.
기대하지 않은 행운을 안고 뉴욕으로 연수를 갔을 때는, 서로 다른 인종들끼리 어울려 대화를 하고 인사를 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유창하지 않은 영어도 쓸모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도 개개인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걸 깨닫고,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묻지 않아야 할 질문”이 국적이나 종교, 나이뿐만이 아니라 결혼 여부와 성별(Married or not, Sex) 등도 아주 중요한 예의의 요소라는 걸 배웠습니다.
2년이 넘도록 집중을 해서 번역한 책에서 오류(오역, 誤譯)를 발견한 사람이 보내온 지적 사항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부끄러움과 창피스러움을 이기지 못해 책을 찢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배짱 좋게 또 번역을 하게 된 건 오류의 두려움보다 배움의 가치를 높이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몇 개 문장의 오역보다는 책 전체의 흐름과 내용에서 배울 건 훨씬 많았습니다.
아직도 교만하고 가증스러운 자신이 미울 때가 많지만, 직장생활과 강의, 글쓰기 등을 하면서 살아 온 자신이 기특할 때가 있습니다. 직장생활이나 강사생활이나 글쓰기나, 뭘 하든지 배울 게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지만, 죽기 전에 깨닫고 느낄 수 있는 것도 행운입니다.